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 - 6점
김지영 지음/책세상

  태국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일본에 와 봤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럼! 홋카이도에서 시코쿠까지 가본걸, 이라고 대답했다. 시코쿠? 우동먹으러갔어?, 라고 되묻는 친구에게 (시코쿠의 가가와현은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하다.) 사실은 일본어를 시코쿠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그 전에 일본어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을 때, 시골에서, 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시골에서 배웠을 줄 몰랐냐면서 깜짝 놀라더라. 시코쿠. 내가 처음 밟은 외국 땅이고, 일본어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곳이고,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도 그곳에 있어서, 생각하면 아련하고,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아, 시코쿠는 혼슈 밑에 있는 작은 섬이다. 내 친구가 말한것 처럼 정말 시골이고, 이 책의 저자가 말한데로, 눈이 많이 오는 홋카이도, 도쿄와 오사카가 있는 혼슈, 그리고 부산에서 배타고 갈 수 있는 큐슈는 유명하지만, 시코쿠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나도 처음 갈 때 몰랐으니까. 시코쿠에는 4개의 현이 있는데 에히메 현, 가가와 현, 도쿠시마, 그리고 고치 현이다. 사실 한 번도 가기 힘든 시코쿠를 나는 두번이나 가봤다. 처음 가서 일본어를 배웠다는 그 곳은 가가와 현이고, 두번째로 한일학생교류로 갔을 때는 고치에 갔었다. 이 섬이랑 아무래도 특별한 인연이 있나보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처음 봤을때 가슴이 떨렸다. 그리고 호기심이 생겼다. '오핸로'라니, 그런 곳이 있었나? 요즘 유행하는 도보 여행 혹은 순례길, 스페인의 산티아고라던가 제주도 올레길이라던가 그런 것이 시코쿠에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책에서 '오핸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입은 복장 - 큰 삿갓과 하얀 옷 그리고 지팡이 - 를 한 사람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시코쿠의 4개 현에 있는 88개의 절을 모두 도는 것. 그것이 '오핸로'의 정체이다. 총 1,400 km. 매일 걸으면 한달 반 정도 걸린단다. 내가 머물던 곳이 젠츠지 근처 여서 그 절에는 몇 번 가본적 있었는데, 알고보니 시코쿠에서 거의 제일 큰 절이었다. 와우! 근데 왜 난 '오핸로'를 몰랐을까.

  이 책은 저자가 시코쿠의 순례길을 4달에 걸쳐 돌고 그 길에 대해서,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쓴 글이다. 왜, 이런 걷기 여행이라던가 자전거 여행이라던가 해보고 싶은데 막상 힘들 것 같아서 망설여지는 그런 종류의 여행을 한 사람들을 보면 원래 운동이 취미라거나, 이미 높은 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거나 한다면 정말 '나는 못해'라는 생각이 먼저 들텐데, 이 저자는 그러지 않았다. 나와 똑같이 운동은 취미가 아니고, 방바닥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왠지 '나도 언젠가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 대해서,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연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다른 도보여행책이나 다를게 없었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는 그 길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여행자로만 그 길을 걷고 끝내는게 아니라, 교토에서 만난 인연인 니나가와 상이 운영하는 '토사 토지안'에서 다른 오핸로들에게 친절을 베풀기도 하면서 그 길에 참여한다. 그래서 책의 성격이 때로는 이 길을 소개해주는 목소리이기도, 때로는 여행자이기도, 때로는 다른 여행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침을 챙겨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운 면도 있었고,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성격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니까 그것도 이 책의 특징인것 같다. 참, 그러고 보니 이 분은 이 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가서 그런 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완성된 다큐멘터리도 있고, 프랑스의 한 독립영화제에도 초대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을 땐, 당장이라도 가고싶은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더 아껴두기로 했다. 언젠가 삶이 목표를 잃고 휘청거릴 때 모든 것을 손에서 놔 버리고 싶을 때 길 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그곳에, 그리고 마침 우연히도, 어쩌면 행운스럽게도 내 스무살의 추억이 88개의 절 중 75번 절에 녹아있는 그 곳을 밟고 싶다. 그 때가 되면 이 책을 다시 찾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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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ella★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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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moongsiri.tistory.com BlogIcon 딸기뿡이 2009/12/31 11:43

    그 친구 말이 더 웃긴다. 아니, 우동 먹으러 라니? 하하하. 우동이 넘 유명해서 그럴 수도 있다지만, 우리로 치면 전주에 왜 갔어? 비빔밥 먹으러 이거잖아 풉...
    아, 일본어를 시코쿠에서 공부한 줄은 몰랐네? 시코쿠라는 이름은 낯선데 속한 현 중에서 '가가와 현'은 왜 일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내가 익숙한 거지? 엄청 유명한 거라도 있는 건가?
    아아, 이 책이 도보 순례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로구나. 여행책은 안 읽지만, 도보 관련 책은 이상하게 궁금하더라. 분명 여행 책보다는 그 속에 저자의 깊은 속내가 더 담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말이야.

    • addr | edit/del Favicon of http://capella.pe.kr BlogIcon Capella★ 2010/01/01 10:53

      맞아요 딱 그거! 전주 비빔밥먹으러갔어? 이거예요 ㅎㅎㅎ 가가와현은 우동으로 유명한데, 사누키우동이요. '우동'이란 영화도 여기가 배경이라던데, 역시 우동 때문에 들어본게 아닐까요? ㅎㅎ 도보 관련책은 궁금해요진짜 뭔가 인생의 깨달음은 얻은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ㅎㅎ 언젠가 떠나보고싶어요 슝~ 하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