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거리를 따라서 대통령궁을 지나 걷다보니 어느새 구 시가지 입구라는 잠코비 광장(Plac Zamkowy)와 지그문트 3세 청동입상이 나타났다.
지그문트 3세는 폴란드와 스웨덴의 왕으로 1596년 수도를 크라코프에서 바르샤바로 옮긴 사람이라고 한다. 1644년에 세워진 이 동상도 세계대전 중 파괴되었지만 전쟁 후 재건되었다고 한다. 오른쪽에는 폴란드 왕실이 사용했다는 바르샤바 왕궁(Zamek Krolewski)가 있다. 이 곳도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72년부터 복원했다고 한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구 시가지의 입구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았던 바르샤바의 모습과 달랐다. 문화과학궁전 주변의 정리되지 않은 모습, 신세계 거리의 새로 닦은 길 같은 모습과 다르게, 활기차고 사람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시장광장 (Rynek Starego Miasta)로 가기 위해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지나갔다. 골목 곳곳에 가득한 관광객들과 시민들로 번잡한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드디어 시장 광장에 도착! 이 곳도 2차 세계대전 이후 복구된 곳이란다. 19세기 이후 바르샤바 시민들의 생활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지의 중심지 같은 역할? 공연도 열리고, 그림그려주기 등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시장광장 한편에는 바르샤바의 상징물인 인어상이 있다. '인어상'하면 꼬리를 모으고 얌전하게 앉아있는 인어공주같은 인어를 생각하는데, 이 곳의 인어는 검과 방패를 들고 있다. 금방이라도 싸울듯이, 아니, 이 나라는 내가 지키겠다고 하는 듯이 말이다. 바르샤바에 인어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농부가 인어를 잡아서 헛간에 가둬놨는데 인어가 울고있어서 농부 친구들이 구해주자 인어가 고맙다고 무슨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그랬다는데 ... 아무튼, 저 인어상은 2차대전때도 살아남았고, 기초석에는 총알이 많이 박혀있다고 한다. 지금은 아주 평화롭게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구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 ...
지금까지 위에서 계속 '파괴'되었다, '복원'되었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럼 도대체 얼마나 파괴되었고, 복원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복원된 유적으로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을까? 그래서 2차 대전 당시에 바르샤바 사진을 찾아보았다.
바르샤바의 제 2차대전 당시 모습을 가장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영화 '피아니스트'이다. 폐허가 된 도시를 가르는 피아노 선율이 참 마음이 아팠고, 아름다웠던 그 영화의 배경이 바로 바르샤바이다. 전쟁 당시 바르샤바의 건물 80%가 모두 파괴되었다고 한다.
사진 출처: http://www.polishforums.com/history-poland-34/restoration-polish-cities-ww-destruction-32836/
오른쪽 맨 위의 사진은 잠코비 광장을 늠름하게 지키고 있는 지그문트 3세의 동상이다. 땅에 내려와있다. 그 다음 사진은 바르샤바 왕궁.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아래 사진들은 올드타운. 구 시가지. 색색의 예쁜 건물들이 모두 불에 타퍼리고, 폐허가 되버렸다.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진 바르샤바는 시민들의 손에 의해 다시 복원되어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복원된 유산으로는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는 그만한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바르샤바는 '그림과 기억을 토대로 인공적으로 복원된 과거'였다. 폴란드 사람들은 이탈리아화가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그림을 토대로 바르샤바를 복원했다. 벨로토는 18세기 폴란드 스타니스와프 2세의 궁정화가로 많은 바르샤바의 풍경화를 남겼고, 복원은 이 그림을 토대로 복원되었다.
거리 곳곳에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그림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념석 같은 것이 있었다,
바르샤바 구 시가지를 보면서 여느 유럽의 도시처럼 아름답다! 라고 감탄할 수 만은 없었던 것은, 이 곳이 단순히 역사를 간직한 곳이 아니라, 국민의 힘으로 역사를 복원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림속의 아름다운 도시와 지금 눈앞의 아름다운 도시, 그 시간의 간격 사이에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를 되돌아보면, 전쟁이 얼마나 잔인한지 그리고 인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 피아니스트 포스터를 보니
빌려주었던 dvd를 찾아와서 다시 보고 싶네요
영화속의 모습과 비슷한 분위기의 폐허현장이...
처참하게 느껴지네요
손글씨로 설명해주니 너무 좋은데요^^
왕궁의 규모가 작아서 놀랐습니다
언젠가 가게되면 이사진들을 눈에 넣어서 가겠습니다 ^^
지난 여름, 폴란드를 방문한 이유는 일종의 여름학교에 참여하기 위해서였고, 일정은 폴란드 제2의 도시 우지(Lodz)에서 진행되었다. 어렵게 폴란드에 온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가고 싶어 갈때는 헬싱키에서 하루 지냈던 것 처럼 올때는 바르샤바에서 하루를 더 지내고 오기로 했다. 7월 10일 새벽, 우지에서 기차를 타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Warsaw)에 도착했다.
어디가면 여행일정이며 숙소까지 내가 다 정하고 전전긍긍하며 스트레스 받는 편인데, 바르샤바에 오기 전에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싱가폴 친구가 비행기시간도 비슷하니까 같이가자며 숙소도 직접 예약하고 오는 기차편이며 버스편도 알아봐줘서 편하게 왔다. 숙소는 문화과학궁전 앞에있는 노보텔. 큰 짐을 헥헥거리며 끌고 호텔방에 와서야 겨우 바르샤바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 만난 바르샤바의 하늘은 파랬고, 도시는 뭔가 낯설었다. 고층건물이 밀집한 것도 아닌, 그렇다고 낮은 건물만도 모여있는 것이 아닌 약간 부조화스러운 모습이 바르샤바의 첫 인상이었다. 짐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바르샤바가 어떤 도시인지 알아보기 위해 나섰다. 같이 머문 싱가폴친구 J양은 우지에 오기 전에도 3일정도 바르샤바에 머물렀어서 이미 이곳의 전문가! 그녀가 추천하는 신세계 거리와 구 시가지를 보기위해 길을 나섰다.
폴란드에 가기 전에 폴란드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폴란드의 역사도 참 복잡했다. 독일과 소련사이에 끼어서 여기 저기 전쟁과 식민지배. 고스란히 자기 나라를 지키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젠가 국어 교과서 속에서 본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구절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 복잡한 역사 속에서 바르샤바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1596년 폴란드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1815년에는 바르샤바 왕국의 수도가 되고 1918년에는 폴란드가 공화국으로 독립하자 다시 수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939년 9월 독일군에 의해 시가지가 파괴, 1943년 4~5월의 게토우 봉기, 1944년 8~9월의 바르샤바 봉기로 시가전이 벌어저 시내 건물이 80%이상 파괴되었었다고 한다. 1945년 독일로부터 해방되자 시가지 재건이 이러어져 폴란드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복원된 구 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호텔에서 약 15분 정도 걸어가 신세계 거리(Nowy Swiat)의 입구에 도착했다. 큰 길 양옆으로 많은 음식점들과 가게가 늘어서 있었다. 여러 가게를 둘러보는 것도 즐겁지만, 신세계 거리에서 구 시가지 쪽으로 가면서 보고가야 할 것은 코페르니쿠스 동상 (순전히 내 취향), 쇼팽의 심장이 있다는 성십자가교회 (Kościół świętokrzyski), 그리고 대통령궁(Pałac Prezydencki)이다.
나라 이름을 들으면 연상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실 폴란드 하면 퀴리부인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쇼팽도, 코페르니쿠스도 폴란드 사람. 특히 과학사과목을 열심히 들은 나로써는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반가울 수 밖에. 사실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은 토룬(Torun)이란 곳이지만 코페르니쿠스의 동상은 이 곳에 있다.
성십자가 교회는 친구따라 쭐래쭐래 갔었는데, 쇼팽의 심장이 묻혀있다고. 본당 왼쪽 기둥에 있다고 한다. 난 본것 같은데 지금 찾아보니까 사진에는 없네. 이 교회도 2차대전때 파괴되었었다고 한다. 쇼팽의 심장도. 하지만 시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재건했다고 ...
길을 따라 걷다보니 대통령궁이 나왔다. 대통령궁의 십자가와 많은 초는 카친스키 대통령을 위한 것 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떠난 카친스키대통령을 추모하는 폴란드인들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폴란드에 있을 때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를 했는데, 선거가 너무 조용히 지나가서 깜짝 놀랐다. 물론 티비도, 신문도 보지않는 외국인이었지만 지나다가다 본 포스터 몇 장. 그게 전부였다. 선거도 일요일이어서 폴란드 친구가 "오늘 선거하고 왔어"라고 해서야 알았다. 우리와는 다른 선거문화. 새로운 경험이었다.
대통령 궁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구 시가지 입구가 나온다. 구 시가지로 가는 길목 ... 여유로운 풍경들 ...
서양의 과학관과 동양의 과학관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점이 있다면 바로 '유명한 과학자'의 존재이다.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의 과학은 과학혁명 이후의 유럽에서 발달된 서양과학으로, 위인전에 나오는 일반인이 아는 유명한 과학자는 죄다 서양인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그 사람들이 쓰던 실험기구만 모아놔도 유물로서 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관이나 과학에 관련된 것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폴란드인데 우연히 퀴리부인 생가가 바르샤바에 있으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알고보니 코페르니쿠스도 폴란드 사람. 구시가지 입구에는 커다란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있었다.
어쨌든 '퀴리부인 박물관'이 있다는 데 안 가볼수가 없지. 마침 친구는 쇼팽 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각자 구경하고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구글 맵에서 지도를 확인하고 가지고 있던 시가지 지도에 대충 표시한 후 길을 나섰다. 하지만 의외로 쉽게 찾아가서 다행.
'퀴리부인 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이 너무 예뻤다. 날씨도 좋고, 성벽도 있고, 노천카페도 많고 ... 그렇게 구경하다가 지나칠까봐 신경쓰다가 마침내 보았다. 'Muzeum....' 이 맘 때쯤에는 폴란드에 2주 있어서 그런지 암호같던 폴란드어도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던 때였다. 일단 겉모습을 한 번 쓰윽 보고는 안 으로 입장! 계단을 올라가 2층에 '퀴리부인 박물관'이 있다.
안에 들어가면 매우 친절하신 분이 표를 끊어 주신다. 학생 할인 받아서 5 PLN. 학생은 좋구나!
내부는 조용했다. 손님은 나 뿐. 이 곳은 퀴리부인의 생가로 1967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조해 박물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폴란드 화학협회에서 관할하고, 내부에는 그녀의 일생을 담은 사진과, 관련된 책자들, 메달들이 있다. 나중에 알았는데, 관련된 영화같은 것도 볼 수 있는데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평생에 언제 다시 갈 지 모르는데, 미리 알아보고 예약할껄 ...
퀴리부인과 관련된 사진과 편지와 책자와 그런 것들. 사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의미있었다. 많은 여성 과학도가 그렇듯 어렸을 때 퀴리부인의 전기를 보고 '과학자가 되고싶다.'라고 생각했고, '화학'을 택한 것도 그렇고, 진부한 문구 같지만 가장 존경하는 여성과학자이기도 하니까. 책에서 논문에서 다 다루지 못하는 역사속의 그 공간에 와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일생을 조금이나마 더 알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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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구시가지를 가니 진짜 동유럽을 만끽하는거 같네요....
유럽은 한국일본과 다른 여유로움이 느껴지다니깐요~
좋은 성탄되세요....
네~ 구시가지가야 유럽의 모습이 ㅎㅎㅎ 즐거운 성탄절보내세요!
앗, 구시가지 올려주셨네요. ㅎㅎ
역시... 이뻐요.
집들이 다닥다닥 불어있는 모양은 샌프란과 닮아있읍니다.
Merry Christmas, Capella님~ ^^
오호! 그렇군요~ 샌프란시스코 가보고싶어요! blueprint님도 merry Christmas!
좋아하는 영화 피아니스트 포스터를 보니
빌려주었던 dvd를 찾아와서 다시 보고 싶네요
영화속의 모습과 비슷한 분위기의 폐허현장이...
처참하게 느껴지네요
손글씨로 설명해주니 너무 좋은데요^^
왕궁의 규모가 작아서 놀랐습니다
언젠가 가게되면 이사진들을 눈에 넣어서 가겠습니다 ^^
chopin의 녹턴 20번을 듣고 있으면
저 폐허의 장면이 떠올라요~~
어제 들었는데...ㅎ
이래서 구시가지 구도심이 매력적이예요. 근래에 정동 쪽에 갔다와서 또 옛 건물에 흠뻑 취해서 왔지요 ㅎㅎ 인어상에 얽힌 이야기가 이색적이고 좋네요. 저렇게 용맹스러운 인어라니 새삼 반하겠어요.